
여름이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보통은 푸릇푸릇하고 싱그러운 영화를 떠올리겠지만, 나에게는 영화 <이끼>가 그렇다. 우거진 나무들과 몇 없는 가로등 탓인지 시골의 여름은 유난히 어둡고 습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끼>는 그 축축하고 음습한 시골마을의 분위기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두었다.
20여년간 의절했던 아버지 유목형의 부고 소식을 듣고 시골마을로 내려간 유해국. 그 곳 주민들은 어딘가 해국을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고, 아버지의 사망에 대한 해국의 의심은 커져만 간다. 이에 해국은 마을에 머물면서 수상한 비밀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 유목형과 마을 이장 천용덕이 마을을 꾸리게 된 계기, 이상한 마을 사람들의 정체, 유목형이 죽게 된 이유 등 수많은 의문과 의심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오히려 모호해지는 것들이 생긴다. 타인을 장악하려는 자와 심판하려는 자, 선과 악의 경계, 정신적 구원자는 메시아일까 악마일까, 갱생은 누군가 이뤄줄 수 있는가 등 <이끼>는 관객들에게 수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형사와 범죄자가 한 마을에 모여살고, 형사는 범죄자들을 부려 사리사욕을 챙긴다. 그들을 감화시키겠다는 자는 구원을 말함과 동시에 이들을 심판하고, 처벌하고자 한다. 선과 악,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흐릿하다.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평범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수많은 인간 군상이 나타난다. 천용덕은, 유목형은 악인일까? 마을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마을 주민 둘을 죽인 유해국은 선인일까? 해국을 끌어들인 영지는 선인일까? 어쩌면 악은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늘 우리 곁에 있는지도 모른다.

2010년 청룡영화상에서 감독상, 남우주∙조연상 3관왕을 달성한 영화 <이끼>는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80여편에 달하는 웹툰을 담다 보니 영화는 163분으로 긴 편이나,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지루할 틈이 없다.
<이끼>는 연재 중에 영화화가 결정되어 원작과 영화가 다른 부분이 꽤 있다. 그 중에서 좋은 점을 꼽자면 웹툰에서 복수의 도구로 소비된 캐릭터 영지가 특히 그렇다. 영화 속 영지는 원작보다 적극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지는데,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에서 이런 여성 캐릭터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