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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날 좋아해?"

엄마가 지어준 이름을 거부하는 한 청소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틴.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참으로 독특한 아이다. 크리스틴은 이름을 비롯한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을 부정한다. 고향인 새크라멘토, 사는 곳, 가족 등 모든 걸 싫어한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는 곳, 뉴욕으로 떠나고자 한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길 바란다. 특히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한다. 엄마와 닮았으면서도 엄마를 싫어하고, 엄마가 잔소리를 하자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한다. 정말 지독한 사춘기를 겪고 있다. 사춘기 청소년을 건드려서는 안 되니, 일단 크리스틴이 원하는 대로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주자. 하지만 이내 '레이디 버드'는 다시 크리스틴으로 돌아올 것이다. 늘 그렇듯 질풍노도의 시기는 언젠가 끝난다. 성장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그래서 더욱 그 시절이 소중하며, 가끔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아마도 각본가이자 감독인 그레타 거윅이 <레이디 버드>를 만든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영화의 배경은 캘리포니아주의 주도인 '새크라멘토'다. 감독인 그레타 거윅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 속 레이디 버드처럼 새크라멘토에서 자라 뉴욕으로 대학을 갔다. <레이디 버드>를 통해 배우에서 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첫 영화로 자전적 이야기를 선택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

"캘리포니아의 쾌락주의를 논하는 자는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봐야 한다" - 존 디디온

<레이디버드>에는 그레타 거윅이 바라보는 새크라멘토가 담겨 있다. 영화의 첫 시작으로 새크라멘토 출신 작가인 존 디디온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보면, 이 영화는 레이디 버드라는 인물을 통해 새크라멘토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레타 거윅이 새크라멘토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애정 어린 마음이 담겨있다. 새크라멘토의 풍경을 연속해서 보여주며, 그 마음을 드러낸다. 아마 레이디 버드가 영화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감독 또한 자라면서는 이 공간이 지겨웠을지라도, 뉴욕으로 떠난 후 점차 새크라멘토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음을 깨달은 듯하다. <레이디 버드>는 그 과정을 우리에게도 보여주며 묘한 공감을 불러온다. 새크라멘토를 가본 적 없음에도 새크라멘토를 사랑하게 만들고, 동양 사람인데도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게 만든다.

왜 모델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왜 부잣집 딸이 아닐까 하는 고민들과 인기 있는 무리에 들어가고 싶어 하며 엄마와 싸우는 모든 것들이 똑같다. 그레타 거윅이 우리들의 성장을 대신 기록해 준 것 같다. 더불어 사춘기 딸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도 우리에게 알려준다. 엄마를 이해하고,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십 대의 내가 그리워지면, 이 영화를 자꾸만 들춰보게 된다. <레이디 버드>를 통해 성장통을 겪던 그 시절의 우리가 귀엽고 소중한 사람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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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는 유독 나를 어렵게 만드는 작품이다. 꼭 보라며 주변에 권하면서도, 왜냐는 질문에 그저 너무 좋다는 말만 연신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작품이 <레이디 버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에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만큼 <레이디 버드>는 사랑스러우면서, 재밌으면서, 아름다운 영화다. 한 마디로 너무 좋은 작품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다. 꼭 보기를...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지며, 성장한 우리를 보듬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